전시 일정
상설 전시실
상설 전시실은 2층에 있습니다. 2121㎡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대형 전시실입니다.
전체는 11개 코너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코너에는 우리 박물관을 대표하는 국보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코너에는 후쿠오카 시를 대표하는 축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에서는 일본열도에서 처음으로 국가라고 할 만한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에 따르면, 서기 57년에 왜의 노국 (奴國) 왕이 중국 황제의 권위를 국내외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후한으로 사신을 보내었고, 광무제로부터 도장 (印) 과 도장을 허리띠에 매는 끈 (綬) 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받았던 도장이 바로 이 금인 (金印) 입니다. 이 금인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시카노 섬에 묻혀 있다가 1754년에 발견되었습니다. (금인은 발견되자 당시의 영주에게 헌상되었고 가메이 난메이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검증으로 중국의 역사서에 나오는 「인수 (印綬) 」임이 밝혀졌습니다. 1931년에는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국가의 성립을 말해주는 증거로서 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을 만큼 유명한 문화재입니다. 실물의 크기도 크기지만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광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빙하기에는 지금의 현해탄의 대부분이 육지였습니다. 약 26,000년 전에 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 이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약 15,000년 전에는 빙하기가 쇠퇴하자 해수면이 상승하여 현해탄이 나타나 대룩과 열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바다나 숲에서 가져오는 음식물을 토기를 사용하여 취사하고, 활로 사냥을 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대륙으로부터 벼농사가 전래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풍부한 벼의 수확을 사회 기반으로 하여 농경 촌락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촌락은 국가라고 할 만한 존재로 성장했니다. 일본열도내의 여러 나라 왕들은 중국 왕조로 사신을 보내고 국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대륙의 선진 문화 도입에 힘썼습니다.
일본열도내의 패권은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이 지역은 외교나 통상의 창구, 혹은 국가 방위의 최전선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의 정권은 이 지역에 「고로관 (鴻臚館) 」이라는 외교 시설을 두었습니다. 그 유적은 후쿠오카 시내에서 1987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고로관」을 통해 고대의 국제 교류를 알 수 있습니다.
고로관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교역은 11세기 중기에 쇠퇴했습니다. 그 후 하카타에서의 무역 규모가 확대되어 갑니다. 무역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하카타에 사는 중국출신의 무역상인 「하카타 고슈 (博多綱首) 」였습니다. 그들은 「도보 (唐房) 」라고 불리는 차이나 타운을 형성했습니다. 그들의 활약으로 반짝이는 도자기나 선 (禪) 등, 새로운 문물이 일본으로 전래되었습니다.
몽고의 일본 침공 이후, 교역의 중심으로 일본인이 대두했습니다. 그들은 일본과 명을 오가는 무역선을 경영하여 류큐 (琉球) , 한반도 사이를 왕래했습니다. 동중국해를 무대로 활약하여 대상이 된 그들의 가져오는 부로 하카타는 크게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무사들의 심한 싸움터가 된 것입니다.
에도 시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봉건 영주인 구로다 가문이 이 땅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영주인 구로다 나가마사는 새로운 성과 성시를 건설하고 그곳을 「후쿠오카」라고 명명했습니다. 후쿠오카는 성시로서, 하카타는 상업의 도시로서,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했습니다. 오랫동안 평화스러운 사회가 계속되었고 새로운 학문이나 사상이 나왔습니다.
19세기 말, 이 지역에도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 들었습니다. 1889년에는 후쿠오카와 하카타를 합쳐서 후쿠오카 시가 탄생합니다. 후쿠오카 시는 박람회를 계기로 해서 시가지나 교통망을 정비하고 규슈 제일의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의 대공습으로 도시는 초토화되었지만, 사람들은 축제나 스포츠로 마음을 추스리고 부흥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고도 경제 성장을 거쳐 후쿠오카 시는 도시로서 점점 성장해 가게 됩니다. 아시아 여러 도시와의 가까운 거리가 이 지역의 활력을 만들어 내는 요인으로 생각되어, 1989년에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를 개최했습니다. 박물관이 있는 시 사이드 모모치 지구도 그 시기에 생긴 새로운 거리입니다. 여기에서 후쿠오카의 미래의 모습이 보입니까?
지역에는 그 지역마다 독자적인 생활방식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요? 어떤 가상의 4대 가족을 예로 들어, 그들을 둘러싼 몇 가지 사건을 통해 후쿠오카·하카타에 사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회 환경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그것을 어떻게 전해 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지역의 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주는 행사입니다. 무더운 일본의 여름, 옛날 사람들은 전염병의 유행을 두려워하였는데, 전염병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여 초여름에 다양한 축제를 행해 왔습니다.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의 유래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나 고전에 등장하는 영웅의 활약 장면을 인형이나 다양한 장식으로 나타낸 야마카사는 처음에는 조용하게 거리를 순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다이내믹하게 거리를 질주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 축제는 하카타 안에 있는 여러 동네가 각각 조직하는 「나가레 (流) 」에 의해 운영됩니다.나가네 속에서 사람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축제의 전통을 지키며, 축제를 이어나가기 위해 굳게 결속하고 있습니다.